비늘 / 2023

유리창들은
술취한 붉은 얼굴로
막들 웃으며
저 건너 바다에서
춤추는데
-인천만국공원, 이경손
물길이 바뀌고 침식의 자리에 퇴적된 역사가 있다. 차곡차곡 얹힌 이름은 온갖 망령을 불러들여 또 다른 전장이 되었다.
과거에 몇 번을 올랐지만 이제야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마주한다. 속내 없는 사람들과 같이 바다를 등지고 배회했다.
커다란 삼각대가 눈에 띄었는지 얼근히 취한 사람이 다가왔다. 가볍게 집을 가리켰다. 근방의 어디서도 보이는 재개발 구역의 새 아파트이다.
태어나서 줄곧 살아온 동네라며 어디로 가야할지 알려주고 헤어졌지만 이내 멀리서 나를 불러세웠다.
미덥지 않았는지 최근에 방영했던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직접 안내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와 놀던 곳이라 단번에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국적인 구조의, 낡은 건물 내 작은 골목이었다.
짧은 흥미를 보이고 눈길 둘 곳이 없던 와중에 그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나칠만한 대사를 읊으며 연기를 흉내내고선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 다시 한번 자신을 소개했다. 모르는 드라마라서 대화는 매끄럽지 않았고 자연스레 뒤돌아 나왔다.
유난히 울룩불룩한 바닥에는 낯이 익은 육각의 보도블록이 불거져 있다. 오래되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듯 더 이상 손대지 않는 듯도 했다.
아니면 간신히 붙들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퇴색하는 역사의 편린보다 한때 빛나던 그의 비늘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ATM, James Prez
참조
- 2023, 《이미지로 건너온 시들》, 한국근대문학관, 인천, 단체전